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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여 년이 된 것 같다. 20대 후반에 한창 배고팠던 시절이었지. 연남동 애경 디자인 센터 건너편에 '툴상사'라는 광고자재상이 있다. 그 공간에서 1년 정도 근무한 적이 있어 이 인근이 왠지 내 정신적 고향과 같다.

아내님에게 아침을 야무지게 받아먹고 망원역 근처에 있는 카페 '창비'에서 일을 시작했다. 5시간 동안 웍스바이에 관련된 글 개요를 기획하는 일을 마무리 지었다. 오후에는 아내님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합정역이 더 가까웠지만, 정신적 고향을 한 번 둘러보기로 했다. 그래서 홍대입구역으로 고고씽.

홍대입구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어떤 것들이 변했고, 어떤 것들이 변하지 않았는지 둘러보는 게 내 취미다. 사라진 공간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 생긴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 교차하는 그 시간이 나는 너무 좋다. 드라마 촬영하는 임채무 씨도 보고, 요즘 홍대 스타일답게 인테리어된 새로운 브랜드도 구경하고...

그렇게 걸어오는 길에 툴상사에서 근무하던 시절 종종 점심을 먹으러 들렀던 '원조 30년 정통옛날손짜장' 집 앞에 도착했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서 배가 고프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정신적 노동이 꽤 격했던 모양이다. 가게로 들어갈까 말까 하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옛날의 그 느낌을 기대하면서.

TV에는 (당시에는 몰랐지만) 100만 명이 모인 집회에서 김제동 씨가 이야기하는 모습이 흘러나왔다. 그리 크지 않은 홀의 귀퉁이에 앉아 손짜장 1개를 시켰다. 곱빼기를 시킬까 말까 조금 고민했는데, 이미 3시가 넘은 시간이어서 보통으로 시켰다.

이곳은 기본 반찬으로 단무지, 양파 외에 설탕을 묻힌 구운 땅콩이 함께 나온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땅콩을 보니 옛날 생각이 훅~ 났다. 짜장면을 기다리면서 인테리어를 뚤레뚤레 훑어본다. 변한 게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얼마 있지 않아 맛있는 비주얼의 짜장면이 나왔고, 흡입했다. 짜장은 살짝 달짝지근하고 순한 편이다. 면은 당연히 찰기가 좋다. 고기는 큼지막하게 씹힌다. 옛날 맛 그대로인 것 같다. 사실 옛날 맛이 정확히 기억 날 리는 없지. 그래도 느낌이 그랬다. 이런 맛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홍대 메인 스트릿 건물주 횡포에 밀려 연남동 일대로 많은 브랜드가 밀려 들어오는 추세다. 10여 년 전에는 디자인 계열의 회사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그 자리엔 카페, 음식점들이 들어섰다. 내년, 내후년이 되면 손짜장집도 사라지게 될까? 자꾸만 변해가는 이 공간이 하나도 변하지 않은 광주 우리 동네의 모습과 묘하게 비교가 되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 수타면 + 달짝지근한 짜장 + 단무지 + 양파 + 춘장 + 설탕 묻힌 구운 땅콩 = 27세 이자빠의 입맛을 되살린 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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