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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가위 눌림

자빠질라 2010. 9. 27. 14:44




추석이면 고향 집에 간다. 고향인 광주에는 중학생때부터 군대 시절을 제외하고 24살때까지 살았던 아파트가 있다. 그리고 아직 그 곳에는 마지막까지 함께 살았던 고모님이 주거하고 계신다. 24평짜리 아파트. 그 중 내가 쓰던 작은방이 있다. 그런데... 이 방은 예전부터 무언가 오싹한 구석이 있었다. 그래.. 그래서 항상 문을 열어두고 라디오 소리를 벗삼아 잠들곤 했었지. 평소 집에 가더라도 거실에서만 잤던 나였는데 지난주 추석때는 여동생과 고모님이 거실에서, 그리고 나는 작은 방에서 자게 되었다. 그리고 가위에 눌렸다.

이제는 내 몸을 뉘우기에는 협소해져버린 싱글 침대 끄트머리. 옆으로 누워 자던 나는 문득 잠에서 깨어 작은방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평소와 뭔가가 다르다. 문 옆에 또 다른 문이 있어 열어보았다. 한 아저씨가 한숨을 푹푹 내리쉬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우리 아이가 그림 속으로 사라져 버렸어요..."
"그림이요?"
"예... 격자 문향의 그림속으로요..."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은 후 황당하지만 측은한 마음을 가지고 그 방을 나왔다. 그리고 나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서 다시 침대에 옆으로 누웠다. 다시 잠들려던 찰나. 방안의 느낌이 달라졌음을 느껴 감았던 눈을 떴다. 내 발치에 위치한 벽면에 그림이 있었다. 격자 문향의 그림. 그리고 몸이 뻣뻣해짐을 느끼며 가위에 눌렸음을 감지했다.

온 몸이 굳어져 고통을 느꼈을 때 우습게도 인셉션 생각이 났다. 킥. 방바닥쪽으로 떨구어져 있던 손끝을 가까스로 움직여 침대의 측면에 걸친 후 오그리는 동작을 취했다. 쿵. 난 방바닥으로 굴러 떨어졌고 옴짝달싹하지 못했던 가위가 거짓말 처럼 풀렸다. 그런데 거실에서 자고 있어야 했던 여동생이 저 침대 너머 방바닥에서 눈을 부비며 상체를 일으켰다.

"오빠 왜그래? 왜 서있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저씨. 그림. 가위. 킥. 동생이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으흥~ 별거 아니네. 그거 거문고 소리 들리면 또 그럴꺼야"
"응?!"

갑자기 눈이 떠졌다. 난 침대 위에 대(大)자로 누워있었다. 아 지금 까지 모두 꿈이었구나. 그나저나 킥이라니. 나도 참 웃기는 녀석이란 생각에 실소를 머금었다. 아직 컴컴한걸 보니 이른 새벽인듯 싶어 시계를 봐야겠다 생각했다.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거문고 뜯는 소리가 들리면서 다시 몸이 급격히 굳어 일어나지 못했다. 젠장.

한참 고생하다 겨우 가위가 풀리자 작은방에서 잠자는게 무서워졌다. 어떻게 가위가 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불을 양팔로 휘감아 솜사탕 처럼 만들어 들고 거실로 나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이 진정 될 때까지 소파위에서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무언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깨보니 아침이다. 고모님이 식사준비 하시는 소리가 연신 들렸다. 식사를 하다가 가위 눌린 이야기를 했는데, 여동생도 작은방에서 잘 때마다 가위가 눌린단다. 젠장. 젠장. 젠장. 뭔가 황당하지만 기분나쁜 지난 밤이었다.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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